[오세주의 부모 독서교육칼럼 32] 황희와 맹사성을 통한 뿌리 깊은 독서의 교훈
[오세주의 부모 독서교육칼럼 32] 황희와 맹사성을 통한 뿌리 깊은 독서의 교훈
  • 이천신문
  • 승인 2020.08.2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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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주 강사
오세주 강사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조선의 인본주위 사상을 통해 그 안에 숨겨진 놀라운 독서이야기들을 본다. 책이란, ‘읽는다.’ 란 개념보다는 ‘펼친다.’라는 개념이 더 맞는다. 책을 읽고 그 내용들을 펼쳐서 정리하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조선은 500년의 역사에 왕들은 기본 독서에 충실한 면들을 본다. 왕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도 독서는 필요하였다. 그보다는 유교를 표방하는 나라이기에 유학을 중요시하고 학문에 대한 열망을 우선시하였다. 세종대왕은 독서광이라 부르며, 검증된 왕이다. 어려서부터 독서 습관은 물론, 인성, 지덕을 겸비한 최고의 왕이다.

1363년에 태어난, 황희는 개성 출신인데 불과 14세 때 음보로 복안궁 녹사가 되었고, 21세에 사미시에, 23세에 진사시에, 4년 뒤인 1389년 27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듬해에는 성균관 학록에 제수 되었다. 황희 정승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학문에 뛰어나고, 자질과 인성이 훌륭하여 모든 유생들의 귀감으로 자리 잡는다.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서 소유에 대한 나눔과 배려의 도를 실천하신 정승이다. 충청도 온양 출신인 맹사성은 27세에 문과 을제에 급제해서 관직에 올랐다. 1360년생이라 황희 보다는 3살 많고, 관직에도 3년 먼저 올랐다. 맹사성은 세종시대에 황희와 더불어 학문적으로 큰 일들을 감당했다. 세종은 부드러움이 필요한 부분은 맹사성에게 맡기고, 정확성이 요구되는 부분은 황희에게 맡겼다. 황희는 변방의 안정을 위해 6진을 개척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문물의 진흥을 위한 일을 맡기도 하였다. 이에 반해, 맹사성은 음률에 정통해서 악공을 가르치거나, 시험 감독관이 되어 과거 응시자들의 문학적, 학문적 소양을 점검하는 일들을 주로 하였다. 그러나, 맡은 역할과 성격을 떠나 곧고 총렴하여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 만큼은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황희는 학덕이 높고 사리에 밝아, 성격이 치밀하여 너그럽고, 예법 및 임기응변에 뛰어났다. 이처럼 독서에 포부를 나눈 학자들의 삶은 후대에 밑거름으로 작용하였다. 행복한 일은 행복으로 통한다. 진정한 독서의 시작은 나를 알아가는 데서 출발한다. 부지런히 갈고 닦아 독서의 장을 만들어보자. 황희와 맹사성의 후대의 교훈은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사명이다. 독서는 경쟁력이다. 독서는 인생이다. 독서는 나를 알아가는 지름길이다. 온전한 독서로 나를 바꾸고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보자.

@ 독서코칭상담: sejus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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