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맥 문학산책] 지구별여행
[시맥 문학산책] 지구별여행
  • 한국시맥문인협회
  • 승인 2020.11.09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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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여행

             김미희

모양자리 틀 속에서 제작된
선함으로 길들여진 눈물과 사랑은
보이지 않는 질긴 끈에 이끌려
누군가의 기쁨과 자랑이 되기 위해
마음껏 울지는 못했다

오아시스를 가장한 사막 속에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깊은 어둠에 갇혀
간절히 유리벽돌을 갈았으나
나의 정의로운 무기가 되지 못했다
그저 무거운 짐일 뿐 이었다

냄새 나는 낡은 껍질을 털어내자며
이미 식상해버린 연민을 데리고
초대받지 못한 낯선 오르가즘들이
제 굽은 등 뒤로 감춰진 붉은 혀를
마지막 남은 노을빛처럼 빼물고 있다

하얗게 탈색된 뼈마디 부대끼며
시퍼렇게 날선 시간의 연속과 생의 집착
꿈틀거리며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괴물

살아있으나 죽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향해
소리 없는 총으로 쏘아대는 끔찍한 절망
 
밝은 빛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터널
더듬적거리고 넘어져 고름이 밴
질척이는 상처를 달래가며 걷는다
순간, 부서지고 금 간 틈새로 직진하는
강하고 아름다운 빛의 방문

솔 숲 향 가득 채운 사이프러스
조용히 잎을 내려놓는 담담한 나무처럼
상처조차 고요한 저 속 깊은 강물처럼
속눈썹 위 순백의 희망을 앞세워
흑백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걷는 길
우주 정거장 어디쯤에 놓아버린
낯선 기억을 향한 눈물겨운 여행

<한국시맥문인협회>

 

김미희 시인
김미희 시인

시인 프로필
-한국시맥문인협회 시낭송 이사
-시와 수필로 등단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수상
-저서/ 게으른 완제품
-공저/ 마음의 등불을
         푸른 바람개비
         키를 세우는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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